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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도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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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호 저 | 박영사 | 2023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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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따듯하고 사랑스러운 아내 정순경에게
나에게 검도란 여유(餘裕)이다.
검도란 검으로 상대를 이기는 것이 아니라, 표층적으로 드러난 나의 마음(경구의혹)을 버림으로써 심층적 마음(차별하지 않는 보편마음)이 갖는 위대함의 깊이를 발견하는 것이다.
-검도를 즐기는 나의 아들 재민, 재영에게-
책을 내면서
1989년 어느 화창한 봄날 걸어가는 길에 보인 검도도장 간판은 저자로 하여금 검도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 하였다. 그 이후 검도수행은 나의 일상적인 삶과 태도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지속적인 검도수행은 나 자신에게 다양한 질문을 던져 주었다. 처음에는 경기에서 승리를 위한 검도기술에 관심이 있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검도란 나에게 무엇인가? 검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검도의 아름다움은 어디에 있는가? 등의 철학적 질문으로 이어졌다. 그 답을 찾기 위해 저자는 검도관련 서적을 찾아보았다. 그러나 검도기술과 관련된 책은 많이 있었지만, 나의 철학적 질문에 답을 주는 검도철학과 관련된 책은 상대적으로 찾기 힘들었다.
검도철학과 관련된 책의 부재는 저자로 하여금 검도철학에 대한 학문적 관심을 갖게 했다. 그리고 이는 그 당시 다니던 게임회사를 그만 두고 늦깎이로 대학원에 진학하여 무도철학을 공부하는 계기가 되었다. 석사 과정에서 저자는 동양무도의 핵심적인 용어인 기(氣)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서구적 개념으로 설명하고 싶었으며 이를 위해 스피노자(Spinoza)의 저서인 「에티카(Ethica)」에 보인 신체관을 연구하였다. 저자는 그 책에서 스피노자가 언급한 몸과 마음의 합일에서 나오는 힘, 즉 코나투스(Conatus)가 무도에서의 기(氣)를 설명하는 데 충분히 설득력을 갖는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박사 과정에서 저자의 관심은 검도깨달음의 문제였다. 검도의 궁극적인 목적이 검도를 통한 깨달음이라면, 그 깨달음의 과정을 설득력 있게 해명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검도깨달음의 과정을 모르는데 검도깨달음을 획득하기란 논리적으로 말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현상학의 방법으로 검도깨달음의 구조를 연구하였다. 그 이후로도 저자는 지속적으로 검도철학 및 무도철학과 관련된 논의를 연구하고 발표하였다. 이와 같이 저자에게 검도수행은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선생이며, 나는 선생의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 지금도 노력하는 학생이다.
물론 다른 검도수행자들도 자신의 검도수행이 진행됨에 따라 검도기술의 증진뿐만 아니라, 검도가 자신의 일상적인 삶에 어떤 의미인지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으려고 한다. 이 과정 속에서 검도수행자는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검도철학을 설명하거나 그로부터 요구받기도 한다. 그런데 다른 누군가로부터 당신의 검도철학이 무엇인지 질문을 받으면 즉각적으로 답하기란 쉽지 않다. 그 이유는 검도수행자가 검도철학을 무언가 대단한 것으로 미리 설정하거나, 그것을 언급하기 위해서는 오랜 검도수행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검도철학은 검도수행의 높고 낮음과 관계가 없다. 검도철학은 검도수행자 자신의 검도수행 과정에 나타난 의문에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으려는 노력과 의지만 있으면 된다. 검도철학은 검도수행자 자신의 검도경험의 과정 속에서 만들어가는 것이지 완성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검도수행자가 알고 있는 평상심(平常心), 경구의혹(驚懼疑惑), 수파리(守破離), 백련자득(百鍊自得), 검선일여(劍禪一如) 등 다양한 검도철학의 내용도 과거 검도수행자 경험의 결과물이지, 그들 또한 처음부터 그것을 목적으로 수행하지 않았다. 이러한 사실을 토대로 오늘날의 검도수행자는 검도철학에 대한 새로운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먼저 우리는 기존에 언급된 검도철학의 내용을 이해하기 이전에 지금 검도하는 자신의 검도움직임에 먼저 질문을 던져야 한다. 검도철학은 지금 자신의 검도수행의 움직임에서 갖게 된 의문과 경험을 근거로 하는 질문과 답으로 구성되어야 한다. 이는 검도수행의 깊이 정도와 상관이 없다. 이 책은 저자의 검도수행의 과정에서 수반된 자신의 검도움직임과 경험에서 질문을 하고, 많은 선생님과 동료들과의 이야기에서 나온 결과물이다. 따라서 이 책은 모든 검도를 관통하는 검도철학의 내용이기보다는 저자 자신이 검도를 설명하는 하나의 검도철학(A Philosophy of Kumdo)이라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다.
일상적인 삶 때문에 지속적인 검도수행이 부족한 상황에서 과연 저자가 검도철학을 언급하는 것이 타당한가의 근본적인 회의가 없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검도철학이라는 제목으로 한 권의 책을 세상에 내놓는 이유는 검도철학의 연구를 통해 알게 된 앎이 저자의 평생검도의 동력으로 작동하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원동력에서 출발한 저자의 이 책은 충분히 다른 검도수행자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저자의 검도철학에 대해 다른 검도수행자의 비판과 격려가 있다면, 차후 검도철학 내용을 더 풍부하게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이전에 저자의 검도철학의 설명이 어렵지 않고, 독자들에게 쉽게 전달되어야 하는데 걱정이 앞서는 것 또한 사실이다.
본 저서는 이미 학술지에 발표한 글을 새롭게 수정하여 완성하였다. 다만 8장 조선세법과 14장 윤리부분은 이 책을 위해 새롭게 추가하였다. 목록 중 공동저자의 논문을 단독으로 내는 것에 기꺼이 허락해주신 동아대 이동건 교수님, 국립목포대 박동철 교수님에게 감사드린다. 논문과 본 저서를 구성하는 논문의 출처는 다음과 같다.
1장: 검도철학에 대한 일 고찰. 움직임의 철학: 한국체육철학회지. 2017. 25권 제1권, 197-213.
2장: 검도철학에 대한 일 고찰(Ⅱ)-몸, 움직임, 반성과 경험을 중심으로-. 움직임의 철학: 한국체육철학회지. 2017. 25권 제2호, 139-159.
3장: 검도철학에 대한 일 고찰(Ⅲ)-검도에서의 깨달음의 의미와 방법-. 움직임의 철학: 한국체육철학회지. 2018. 26권 제3호, 65-79.
4장: 검도깨달음의 구조에 관한 연구-후설(Husserl)의 현상학적 관점에서-. 대한무도학회지. 2012. 14권 1호, 35-49.
5장: Phenomenology of Kumdo: Surprise, Fear, Suspicion, and Bewilderment. 대한 무도학회 국제학술대회(2012. 11. 21).
6장: 검도에서 무의식 행위-Husserl의 발생론적 현상학을 중심으로-. 움직임의 철학: 한국체육철학회지. 2009. 제17권 제4호, 1-17.
7장: 「화랑세기」에 보이는 검도의 해석학적 함의. 대한무도학회지. 2013. 제15권 제2호, 67-82.
9장: 검도에서 아레테와 덕(德)의 의미. 움직임의 철학: 한국체육철학회지. 2010. 제18권 제2호, 1-18.
10장: 검도실천자의 미적 체험구조. 움직임의 철학: 한국체육철학회지. 2010. 제18권 제3호, 1-18.
11장: 검도관전자의 미적 체험구조. 움직임의 철학: 한국체육철학회지. 2011. 제19권 제2호, 1-19.
12장: 검도심판자의 미적 체험구조. 움직임의 철학: 한국체육철학회지. 2011. 제19권 제4호, 1-17.
13장: 검도철학에 대한 일 고찰(Ⅳ) -검도윤리의 이론적 검토와 실천적 방법-. 움직임의 철학: 한국체육철학회지. 2020. 28권 제4호, 91- 106.
각 논문의 내용과 순서는 유지하였으나, 책 구성에 맞게 많은 부분을 새롭게 수정 및 보완하였다.
이 책은 많은 분의 관심과 도움으로 완성되었다. 동아대학교 이동건 교수님은 필자의 학문적 출발과 성장 과정에 큰 도움을 주셨다. 그는 늦깎이 학생을 기꺼이 제자로 받아주시고, 스포츠철학의 시각을 이끌어 주신 분이다. 또한 강동균 교수님의 불교 가르침도 역시 잊을 수 없다. 그의 불교 가르침은 검선일여(劍禪一如)의 개념 등 검도철학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특히 유식학(唯識學, Yogacara)의 공부는 저자에게 검도의 무심(無心)과 심층마음의 작동을 이해하는 데 유익한 인식론적 틀을 제공하였다.
경상대 심리학과 이 양 교수님의 배려 또한 잊을 수 없다. 저자는 정신물리실험의 박사 후 과정(post-doctor) 전후로 지각(perception)과 행동(action)과 관련된 새로운 학문인 생태 심리학(ecological psychology)을 그로부터 배울 수 있었다. 특히 심리학 강의와 공부를 통해 얻게 된 몸에 배인 인지(embodied cognition)의 이론적 토대는 인지과학과 관련된 학문적 시야를 넓히게 해 주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이 양 교수님도 자연스러운 검을 사용하는 검도 4단의 검도인이었다. 인연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쓴다.
저자는 새벽에 검도장에서 후배, 동료, 사범님, 선생님으로부터 검도를 배운다. 저자에게 검도장(劍道場)의 수행은 학문적 토대가 된다. 특히 부산 여명관(黎明館) 범사 8단 도재화 선생님의 검도에 대한 깊은 사랑과 철학은 빼놓을 수 없다. 생각해 보면 선생님으로부터 특별한 검도기술을 배운 적은 없는 것 같다. 배운 기술이라고는 힘을 빼고 바르게큰칼을 사용하는 방법이 전부였다. 이는 동양무도를 서양에 소개한 헤리겔(Herrigel)의 「활쏘기의 선」에서 언급한 “기술 없는 기술(an artless art)”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단지 저자가 그것을 아는 데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였다.
이 책의 일부 논문은 학회에 발표하였고, 제출된 논문이다. 더 좋은 논문이 되기 위해 심사의견을 주신 모든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그들의 비판적 의견이 있어 이 책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었다. 사상이나 철학은 자신만의 독창적인 생각의 결과물은 아니다. 이 책도 기존 검도철학과 관련된 앞선 연구자의 내용과 결과물에서 얻게 된 유익한 통찰을 기초로 했다. 세상에는 혼자 이루는 것이 없다. 이 책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격려에서 나왔다. 이 책이 출판되는 과정 속에서 선생님, 사범님, 여명관 선후배의 관심과 격려에 감사의 마음을 표한다. 그들 모두가 나의 검도선생님이다. 대아관 송복진 관장님, 세인관 이천혁 관장님, 청무관 김덕주 관장님, 검도의 태도가 무엇인지 보여준 한용칠 사범님, 검도하는 젊음을 보여주신 심경보 사범님, 검도의 꾸준함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신 이순희 사범님, 자신만의 검도를 끊임없이 탐구하고 있는 송수원 사범님, 박성현 사범님, 김경록 사범님, 김동수 사범님, 김범주 사범님, 배순찬 사범님, 장원석 사범님, 장호철 사범님, 정인교 사범님, 하명호 사범님, 허재호 사범님, 윤재성 사범님, 이찬우 사범님, 황상현 사범님, 전상헌 사범님, 김기영 사범님, 서호석 사범님, 손병구 사범님, 문양환 사범님, 김종수 사범님, 류성문 사범님, 김태업 사범님, 김양호 사범님, 강경보 사범님, 장성길 사범님, 이현승 사범님, 정진우 님, 정상훈 님, 허지성 님, 남영원 님, 장세영 님, 여영태 님, 안정현 님, 최호중 님, 허태훈 님, 김근호 님(정명스님), 김재원 님 그리고 검도가 주는 질문에 꾸준히 답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성화수 님, 표지사진을 찍어준 Maximilian Ludwig Hillenblink 님, 저자가 일하고 있는 경성대학교 스포츠건강학과 황옥철, 전병환, 최승준 교수님과 e스포츠연구실에 있는 김영선, 김재훈, 최경환 연구교수에게도 감사드린다. 특히 이 책의 초안을 검토해주시고 세심한 부분까지 의견을 주신 이순희 사범님과 이돈준 박사님께 감사함을 전하며, 부자연스러운 문장들을 지적하고 수정해준 아들 이재영, 이재민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그 이외에도 도움을 주신 많은 분들을 일일이 거명하지 못함을 이해해주시길 바랍니다.
저자의 검도철학은 나의 검도수행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기 때문에 검도에 대한 본인의 주관적인 생각과 관점이 많이 투영되어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럼에도 이 책이 다른 검도수행자에게 평생검도의 길을 가는 데 촉매제가 되길 바란다. 검도의 단(段)은 거기에 맞는 실력을 보여 주었기 때문에 주는 증표이기보다는 그 단에 맞는 검도를 해야 한다는 의무감의 표시라고 들었다. 이렇게 한 권의 검도철학을 내놓으며, 이 책이 다른 검도수행자의 더 깊은 검도철학의 연구를 위한 디딤돌이 되기를 기대한다. 저자의 검도수행이 진행되어감에 따라 검도철학의 내용도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저자는 많은 동료, 선배, 후배, 선생님의 질정을 기꺼이 기다린다.
새벽에 검도장 가기를 싫어했던 둘째 아들인 재영의 질문은 잊을 수 없다. 그는 왜 자신이 검도를 배워야 하는지 논리적으로 설명해 주기를 저자에게 요구하였다. 초등학교 때 어린 나이의 투정이었지만, 그 질문은 오랜 시간 나의 머리에 숙제로 머물러 있었다. 이제 성인이 된 둘째 아들의 질문에 늦었지만, 이 책으로 그 답변을 대신하고자 한다. 사회인이 되어 ‘이제 검도를 즐긴다’고 말하는 첫째 아들 재민에게도 이 책이 검도를 더욱더 사랑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이 책을 쓸 때 힘들 때마다 듣게 된 가야금 명인 황병기의 작곡 음악 CD인 춘설(春雪), 침향무(沈香舞), 비단길, 미궁(迷宮)은 나의 평온한 마음의 회복에 도움을 주었다. 다시금 그에게 감사를 전한다.
대중적이지 않는 검도철학서의 출판을 결정해 준 박영사와 완성된 책을 위해 힘써주신 편집의 김윤정 선생님, 정성혁 선생님에게도 감사를 드린다.
마지막으로 나의 모든 검도철학의 연구 과정과 결과는 아들인 재민, 재영의 변함없는 지지와 아내 정순경의 따듯한 격려 덕분에 모든 것이 가능할 수 있었다. 이 기회를 통해 다들 사랑한다는 말을 전한다.
2023년 2월 봄 같은 날에
해운대 장산이 보이는 연구실에서
이상호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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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표준 도서번호(ISBN) : 97911303163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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